강릉은 바다와 커피, 맛집만 있는 도시가 아니에요.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문학이 스며들고, 고요한 생각에 잠기게 되는 그런 도시이기도 하죠. 그 중심에 바로 조선시대 여류시인 허난설헌이 있고, 그녀를 기리는 난설헌문화제가 있습니다. 오늘은 허난설헌이라는 한 여인을 통해, 강릉의 조용하고도 깊은 이야기를 전해볼게요.
글로 세상을 바라봤던 조선의 여인, 허난설헌
요즘도 여성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해지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는데, 하물며 조선 시대는 어땠을까요. 그런 시대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그것이 중국까지 전해졌던 여성 시인이 있었어요. 바로 허난설헌, 본명은 허초희였죠.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감성이 깊었던 그녀는 글을 쓰는 것을 너무나 사랑했어요. 하지만 시대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결혼 생활도 쉽지 않았다고 해요. 자식을 먼저 보내는 아픔까지 겪으며, 그녀는 시 속에 자신의 슬픔과 그리움, 사색을 담기 시작했죠. 그녀의 시는 당시에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이들이 그 안에 담긴 깊이를 알아보게 되었어요. 허난설헌의 시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잔잔한 울림을 줍니다. 특히 여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다는 점에서 더 특별하죠.
허난설헌을 기리는 축제, 강릉 난설헌문화제
강릉에서는 매년 ‘난설헌문화제’가 열립니다. 단순한 기념 행사가 아니라, 난설헌의 시를 직접 읽고, 쓰고, 느껴보는 체험형 문학축제예요. 보통 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열리는데, 꽃 피는 계절과 잘 어울리는 아주 조용하고 따뜻한 행사랍니다. 문화제는 난설헌 생가와 기념공원, 오죽헌 일대에서 열리고요, 시 낭송대회나 시화전, 고택 음악회, 필사 체험, 문학 토크 콘서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어요. 사람마다 취향 따라 고르고 참여할 수 있죠. 가장 좋았던 건, 시를 단순히 감상하는 게 아니라 직접 시 구절을 써보는 시간이었어요. 천천히 붓을 들어 허난설헌의 시 한 줄을 따라 써 내려가다 보면, 마치 그 시절 그 감정 속에 잠시 머무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조용한 사색의 시간, 모두를 위한 문학 여행
난설헌문화제를 걷다 보면, 여성 문인 허난설헌의 삶뿐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에 대해서도 한 번쯤 돌아보게 돼요. 문학이 주는 힘이 그런 거잖아요. 누군가의 글을 읽다가 문득 내 감정이 튀어나오는, 그런 조용한 울림이요. 그녀는 비록 짧은 생을 살았지만,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려 했어요. 특히 여성이 사회적으로 발언권조차 없던 시절에 시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는 건, 지금 봐도 굉장한 용기와 지성의 결과라고 생각해요. 문화제 현장에서 만난 시 하나, 조용한 필사 체험, 그리고 그녀가 살았던 고택을 걸으며 느낀 고요함은 제 여행에서 가장 오래 기억될 장면이 되었답니다. 이 축제는 여성만을 위한 것도, 시인을 위한 것도 아닌, 모두를 위한 사색의 시간이에요.
강릉에 가면 바다도 좋고 커피도 좋지만, 때때로 조용한 내면 여행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그런 분들께 이 문화제를 추천드리고 싶어요. 난설헌의 시를 따라 걷는 길은 길지 않지만, 그 울림은 꽤 오래 가거든요. 문학과 사람이 만나는 곳, 강릉 난설헌문화제. 다음 강릉 여행엔 마음도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꼭 만들어보세요.